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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수기

이민섭 2009. 5. 8. 23:20

 오늘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굴러떨어진 날이다. 세계시민청년포럼에 참가했던 3박 4일간, 패널들 중 다수, 그리고 외국인 청중 위주로 명함을 교환해서 오늘 드디어 내가 받았던 명함을 다 썼다. 피로 때문에 행사 참여에 미진했던 부분도 상당히 많았으나,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며 명함을 수집하고 많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국제 캠퍼스에서 서울캠퍼스로 오는 버스 안에서까지도 명함이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피곤해서 잠자고 일어나서 버스에서 내리고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 몇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쉬면서 노독을 풀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집에 오려고 짐 정리하다가 주머니를 만졌는데 명함이 없었다. 가방에 있나 싶어 뒤졌는데 아예 없었다. 카드와 현금이 있는 지갑은 그대로 있었으니 도둑맞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버스 안에 두고 내렸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내리기 직전 잠에서 깨서 정면의 물건 수납 그물을 봤는데도 뭔가가 거기 있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기에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반쯤 맛이 갔었다. 이제 남은 건, 수첩과 안내 책자에 있는 열 개 남짓 되는 메일들 뿐... 첫날 수기에 관련된 설명을 들었을 때는 '상'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어쨌든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단지 그 명함들만 돌아왔으면 싶은 심정이다. 아니면, 내 뇌가 기계라서 명함을 교환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메일주소만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행사는 뜻깊었다. 어제의 공연은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딱 적당했다. 무대위에서 발생한 소리가 공기와 땅바닥을 통째로 진동시켜 내 가슴을 물리적으로 흔들어댔다. 어제 무대의 주인공들은 그저께의 내 자신과 상당한 비교가 되었다. 확실히, '이름값'이 있어서 이름만 들어도 관중이 열광하고 무대 위에서 하는 동작 하나 하나가 시선을 끄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특수효과'의 덕택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제 공연의 스타들은 말 그대로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쳤고, 무대를 단순히 넓게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중에게 직접 다가서서 사고가 우려될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말해서, '관중과 소통'하는 그 실력, 그 정성 자체가 '역시 프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라고 해서, 그렇게 못하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내가 무대위에 섰을 때, 단 한번이라도 '프로답다'는 말을 붙일 수 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공연을 직접 봤기 때문에', 확실한 자극이 되었고, 앞으로 내가 무대 위 경험을 가질 때는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세션 중 앞쪽 세션은 정말로 자극이 많이 되었다. 수많은 세션 중 유일한 '디베이트 세션'이었고, 내용 또한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이라 굉장히 집중이 잘 되었다. 내 자신이 100%에 가까운 청취율을 보였고 질문거리도 넘칠 정도로 잡아 낼 수 있었다. 이 행사에서 '디베이트 세션'이 보다 더 많았으면 엄청 좋겠다는 생가이 들었다. 세계 시민 청년 포럼에 참가할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평범한 수준들은 아니지만, 행사 2개월 전부터 발표 준비를 하는 패널 간의 논쟁을 통해 청중들이 보다 많은 자극을 받고, 모순된 발언들을 비교해 가며 세계의 문제에 관해 보다 능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발표' 형식이다 보니까, 비록 청중들이 질문하고 나름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수업 듣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찌됐든, 세션들은 다 마쳤고, 알아들은 것은 많지 않았어도 얻은 것은 많았다.

 

 중국 샹치를 둬서 중국인 참가자들 중 날 아는 사람도 있고, 도전 월드벨 참가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행사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즐겼으니 3박 4일을 잘 지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명함'이 단 하나도 없는 지금, 즐거웠던 추억이 아쉬웠던 추억으로 남게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잃어버린 건 내 잘못이니까, 클럽에서 참가자들을 일일이 찾아서 메일을 보내서 연결하고 외국인 친구들의 정보를 처음부터 다시 모으는 방법밖에 없을 듯 싶다. 정말, 이런 기분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